담소유병원은 복강경 탈장 수술 (35,500례) 및 SCI 논문(28건)의 국내 독보적 수술 보유 병원입니다.
[경향신문] '탈장이야기' '전쟁영웅’ 처칠도 피하지 못한 탈장
작성자 : admin 등록일 :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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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장수술은 앞선 칼럼에서 기술한 대로 인류의 모든 시대와 함께 해왔다.
따라서 탈장수술과 관련된 재미 있는 일화도 많은 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국민영웅 처칠은 독일 히틀러의 공세를 막고 영국의 승리를 이끈 공신이지만 그도 미처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 바로 탈장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갑상선 수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외과의사 토마스 던힐은 급한 연락을 받고 한 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가 마주친 환자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당시 처칠은 오른쪽 서혜부탈장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문제는 토마스 던힐이 갑상선 수술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명의이자 조지 6세의 담당외과의사로 임명될 만큼 그 분야 최고의 외과의사였지만 숙련된 탈장수술을 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또 당시 탈장수술은 외과수술에 있어 고난이도의 수술로 분류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토마스 던힐은 어떻게 처칠의 탈장수술을 해낼 수 있었을까?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토마스 던힐은 처칠의 서혜부탈장 수술을 위해 이 수술로 유명했던 한 외과의사의 조수로 한동안 일했다고 한다. 갑상선암 수술로 유명한 교수가 탈장수술을 위해 다른 교수의 보조원으로 근무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왜 다른 유명한 서혜부탈장 수술 의사가 있었는데도 영국은 처칠의 수술을 굳이 토마스 던힐에게 맡긴 것일까? 당시 탈장수술로 유명했던 외과의사는 왕실과 관련 없는 의사였기 때문이란다. 결과적으로 처칠의 탈장수술은 잘 마무리됐고 영국은 처칠의 전략에 따라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히틀러 역시 처칠처럼 탈장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히틀러의 사생활 자체가 워낙 베일에 싸여 있어 이 기록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세계적인 두 라이벌이 탈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신체 장기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조직을 통해 돌출되거나 빠져나오는 탈장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다. 신체 어느 곳에나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복벽에 발생하며 복강을 둘러싼 근육과 근막 사이에 복막이 주머니 모양으로 돌출돼 비정상적인 형태를 이룬다. 실제로 탈장은 외과질환 중 맹장(충수염) 수술과 함께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질환이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따라서 본인이 탈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감돈과 교액 등 합병증이 발생해 심한 통증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방치해 두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이 어른 관계없이 샤워할 때나 옷을 입을 때 사타구니 주변에 달걀모양으로 무엇인가 볼록 올라와 보인다거나 해당 부위를 눌렀을 때 꼬르륵 소리를 내면서 다시 들어간다면 탈장 초기증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만일 시기를 놓쳐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탈장된 장기가 썩어 장기를 절제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